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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5 19:18:25 #플랜뉴스 플랜코리아

글 FAY school 8학년 김 창 기 후원자님 (2005년 8월29 일 방문)

더운 날씨, 신발도 없이 검게 부르튼 맨 발, 겨우 바람만 피할 수 있는 집, 부엌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 책도 연필도 노트도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리타쿠마리 캇위의 초롱초롱한 검은 눈망울만 있을 뿐......

내가 네팔에서 리타를 만난 것은 8월 29일,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매우 더운 때였다. 리타는 ’비라트나가’라는 네팔의 남동부 쪽에 위치한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플랜네팔’에서 리타와 그 아이의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

나는 리타를 항상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리타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서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어서 실제로 네팔에서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리타의 가난을 짐작할 수 없었다. 리타와 나 사이에는 히말라야 산맥같이 큰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이번 기회에 리타를 만나는 것은 내가 그 아이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드디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을 때 네팔의 모습은 내가 생각 했던 것과는 달리 많이 달랐다. 너무 낯선 네팔의 첫 풍경에 조금 걱정도 됐지만, 호기심도 생기고 약간은 기대감에 넘쳤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는 매우 혼잡했다. 더군다나 상상을 초월하는 더위와 익숙치 않은 네팔 특유의 냄새는 나를 위해 같이 와준 엄마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진에서 봤던 네팔의 카트만두의 모습처럼 그 곳에서의 3일은 정말 잊지 못할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고 네팔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크게 발전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 했으면서도 욕심 없는 천진한 웃음을 웃는 사람들. 그래서 더욱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지구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네팔 사람들을 도와준다면 저 사람들이 더 밝게 웃을 수 있을 텐데......(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은 히말라야를 넘어 에베레스트까지 능가 할 만큼 착하고 아름답다.)

내가 리타의 집을 방문하기위해서 ’비라트나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잠시 어수선한 환경에 어리둥절했지만 마음만큼은 벌써 리타와 마을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리타 동네 사람들을 만났다. 길을 가면서도 주어진 3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는데 네팔사람들의 친절함과 마음씨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큼 그 사람들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 사람들처럼 만나자 마자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 나와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물을 떠서 예의바르게 건넸으며 더울까봐 부채질을 해주었다. 마을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항상 나를 위해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감동스럽고 또한 미안했던지...

마침내 리타를 만났다. 난 정말 리타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다 그 애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 지가 궁금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고 내가 조금씩 보내는 지원금이 리타의 행복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정말 내가 보내는 약간의 지원금이 도움이 됐을까?
리타가 사는 마을은 우리나라 시골만큼 자연과 어우러져 있었지만, 모든 집들이 초가집들이었다. 대부분은 흙으로 만들어져 있고 가축과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리타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의 흙바닥에서 먹고 잔다고 했다. 리타의 어머니는 고생 때문에 젊은 나이에도 할머니 같았고 먹을 것도 넉넉하지 않은데 식구는 많았다. 리타는 내가 온다고 단정히 옷을 입고 약간은 두려운 표정이었다. 새까만 아이. 흙투성이의 맨 발.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리타가 너무 불쌍했다.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아인지 알 수 있었다. 리타는 얼마나 힘들까? 나라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곳에서 리타는 살고 있었다. 갑자기 사진에 있던 리타의 굳은 표정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서 더 슬펐다.

온 마을 사람들의 눈이 나를 보고 있었고 굉장히 어색한 상태로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리타가 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몹시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침 그때 리타가 나를 반기면서 인사를 했다. 예의가 아주 바른 아이여서 깜짝 놀랐다. 열 살의 어린 나인데도 리타는 나를 따듯하게 대접했다. 내가 생각하는 10살짜리 우리나라 아이와는 달리 마치 어른같이 의젓했다. 엄마와 내가 볼 때 리타는 정말 대단했다.

리타는 주어진 좋지 않은 환경과 살기 힘든 집에서도 아주 똑똑하게, 열심히 나름대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지금 나의 걱정이나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문제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네팔아이들은 흙바닥에서 먹고 자며 공부하고 있었다. 적어도 난 배고프지는 않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서 힘들지도 않으며 얼마든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 이 순간, 엄마, 아빠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가져간 초콜렛을 리타에게 주었을 때 아이는 그것을 자기의 친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내가 먹으려고 준비했던 초콜렛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보자 차마 먹을 수 없어 리타에게 주었던 것 이었다.리타는 자기만 먹겠다고 욕심 부리지 않았다. 자기 것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나는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엄마는 마을 사람들과 리타의 손을 잡고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꼭 다시 오겠다며 울먹이셨다.

세계 어디에나 어려운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난 적어도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우리 자신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 지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러 학교에 갈 수 있다면 또 얼마나 행복한 지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힘들게 사는 그 사람들을 돕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면서 살아야한다!

네팔은 정말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다. 그런 멋진 자연환경 속에서 그 사람들도 더 이상 힘들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난 앞으로도 리타를 계속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이다.나의 보잘 것 없는 작은 도움이 그 아이에겐 꿈과 희망이 되었다.

끝으로 나에게 이런 값진 체험의 기회를 주신 부모님과 플랜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 네팔에서의 일주일은 내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참된 깨달음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