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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4 18:29:25 #플랜뉴스 플랜코리아

소박한 사람들의 큰 사랑 담은 ’지구촌 희망심기’

국경-피부색 넘은 네팔 ’다음-플랜코리아 희망학교 지원’ 완공식 
 

2064년 9월 10일(네팔력 기준, 서기 2007년 12월 25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500km 떨어져 있는 네팔간지(Nepalgunj) 반카우투와(Bankautuwa) 지역 한 중학교의 운동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교실 한쪽에서는 봉사단 직원들은 학생들을 껴안으며 눈물을 연신 훔쳤다.

학생들도 북받쳐 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훌쩍거리며 봉사단원들에게 매달렸다. 5일 동안 한 마음이 됐던 이방인들을 향한 아쉬운 마음에 마을 사람들 수백 명도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나마스데(Namaste, 안녕하세요)’ 합장 한번, ‘단네밧(감사합니다)’ 합장 또 한 번으로 서로 마음이 통했던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두 번째 ’다음 지구촌 희망학교’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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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네팔간지 국내선 공항(첫번째). 마을 입구 환영행사에 걸려 있는 한국어 현수막(두번째). 마을 축제처럼 진행된 환영 행사(세번째) / 서명덕 기자

◆상상을 초월한 오지에 첫발을 내딛다

12월 20일 오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한 네팔간지 국내선 공항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공항 대합실은 방금 전 폭격을 맞은 듯 곳곳이 무너져 있었다. 현지 관계자는 “네팔간지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와 달리 UN이 들어와 있을 정도로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곳”이라고 했다. 심지어 인도 화폐 중 ‘500루피’짜리는 위조된 것이 너무 많아 사용이 금지돼 있을 정도였다. 현지 주민들은 “지금도 산속 사람들(여기서는 마오주의(공산당) 게릴라 등을 뜻함)이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플랜 코리아와 플랜 네팔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네팔로 온 20여명의 다음커뮤니케이션 봉사단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히말라야 설산’과 ‘메리골드 꽃목걸이’였다. 그러나 ‘네팔=에베레스트 만년설’을 상상하던 이들의 생각은 네팔간지에서의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특히 ‘벌레’와 ‘추위’와의 싸움이 지독했다. 특히 지난밤에 얻은 ‘감기’ 때문에 네팔간지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호텔은 난방 시설은 고사하고, 뜨거운 물도 나오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번 행사에 도움을 준 플랜코리아 관계자는 “그나마 이 호텔은 유리창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며 “우리가 묵고 있는 근처 숙소는 방충망 하나에 찬바람을 그냥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침에 호텔에서 사용한 세안 비누는 한국의 저가형 빨래비누보다도 품질이 더 떨어졌다. 방금 머리를 감았는데도, 뻣뻣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침 식사는 정체불명의 ‘빵’과 ‘잼’이 반겼다. 김치와 컵라면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현지 관계자는 “이 곳은 일찍부터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아침에 빵 먹는 문화가 남아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현지인들은 주로 푸석푸석한 쌀과 카레로 양념된 야채 볶음을 먹으며 생활한다. 이들이 먹는 카레에는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진동했다.

한국의 50~60년대 연상케 하는 네팔간지 시내 중심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포장된 도로 곳곳은 움푹 파인 곳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일부러 과속방지 턱을 해 놓은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차선은 표시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이를 지키는 차량이 없었다. 자가용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그나마 거리에 있던 자동차들은 도로 한가운데서 고장 난 곳을 수리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도로는 자전거, 오토바이와 사람이 자동차와 한데 뒤엉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현지에서 꽤 좋은 미니버스를 빌렸지만, 너무 흔들려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짓다만 건물, 버려진 건물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여기는 건물주가 하루에 수백 루피(한화 수 천원)를 벌기 위해 건물 외벽 전체를 광고판으로 도배를 할 정도로 한 푼이 목마른 곳이다. 현지 관계자는 “카트만두가 한국의 20~30년 전을 연상케 한다면, 네팔간지는 카트만두의 20~30년 전 모습”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멈춰 선 듯 한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포털사이트 다음(http://www.daum.net)을 운영하는 다음 커뮤니케이션 직원 봉사단 20여명은 두 번째 지구촌 희망학교 프로젝트를 위해 네팔에 왔다. 지난 해 캄보디아에 학교를 지어준 데 이어, 이번에도 사내 바자회 및 자발적인 공제 등 다음 직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십시일반 해 상당한 돈을 모았다. 이 돈을 국제 봉사단체 ‘플랜 코리아’와 ‘플랜 네팔’을 통해 교실 10개짜리 새 학교를 지어줬다. 직원 일부는 네팔 아동들과 1:1 결연을 맺고 아이들을 후원해주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가 네팔에 직접 방문해 학생들을 만나고 다양한 봉사 활동을 벌이기 위해 직접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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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공식 행사에서 환영 꽃목걸이를 한아름 받은 석종훈 다음 대표(첫번째). 마을 입구 환영행사에 몰려 나온 학생들(두번째). 이번에 새로 지은 프라바트 학교 외벽을 꾸미고 있는 다음 봉사단원들(세번째) / 서명덕 기자

◆’어서오세요’ 현수막 보며 감동의 탄성

다음이 중학교를 지어 준 네팔간지 지역 반카우투와 네 번째 마을은 네팔간지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네팔 특유의 민족인 ‘다루족’이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며 살고 있다. 네팔에는 다루족이 약 200만명 정도 살고 있다. 뿌연 먼지를 흩날리고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버스에 심하게 몸이 흔들려야 목적지인 ‘프라바트(Prabhat) 중학교’가 나온다. 1400여명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꿈을 키우며 공부하는 곳이다. 프라바트는 ‘시작(Start)’이라는 의미의 네팔어다. 뿌연 안개를 헤치고 도착하기 까지 “과연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는 마음에 버스 안은 이야기꽃이 반발했다.

버스 안에서 현지 통역에 나선 판타 나바라즈(41, 경희대 관광학 박사)씨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사탕이나 학용품 등 물건을 함부로 주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이를 받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서로 싸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정심의 구호는 네팔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과거 미군 부대 주변에서 ‘김미 초콜릿’을 외치며 구걸에 재미를 붙이던 시절과 다르지 않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 가까워지자, 외국인을 본 아이들이 먼저 달리는 버스 주변에 몰려 들었다. 마을 입구는 이미 수백여 명의 마을 사람들과 전통 문화 퍼포먼스를 하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사람들은 비포장 도로 주변에 일렬로 늘어서서 노란 피부의 이방인들을 맞았다. 현지 관계자는 “이들도 외국인을 한두 명씩 가끔 볼 일은 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외국인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마을 입구에 걸려 있는 ‘어서오세요. Welcome’라는 서툰 글씨의 한글 현수막은 가슴을 찡하게 했다. 비록 한국인을 처음 보는 이들이지만, 이들의 정성은 두 나라의 어색함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큰길에서 학교로 향해 있는 걸을 걸은 20~30여분 동안은 마을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그리고 환영의 꽃목걸이로 가득 찼다.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이번 봉사에 참석한 석종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꽃목걸이 무덤에 푹 파묻혔다. 메리골드 꽃목걸이는 ‘환영한다’는 의미의 손님맞이 방법이다.

마을 잔치와도 같은 이날 행사는 새로 지어진 학교 주변을 한번 돌아본 후 진행됐다. 마을 이장은 다음 봉사단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고, 이들은 일일이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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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5일에 걸쳐 네팔 네팔간지 프라바트 중등학교에서 진행된 학생들과 수업 활동 주요 장면 / 서명덕 기자

네팔에서 큰돈을 들여 학교를 새로 짓는 일은 보통 사건이 아니다. 이날 행사에는 네팔 교육감, 청소년 협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프라바트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네겐드라라지 수베딧 교장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학생 대표는 “네팔은 가난한 나라다”며 “한국에서 귀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학부모 대표 역시 인사말에서 “교육이 없으면 나라를 만들 수 없다”며 “귀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고, (우리 마을이) 더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교실 10개를 더 만들어야 이 곳에서 IT 전문대도 시작할 수 있다”며 “계속 도움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네팔 청소년협회 회장은 “10년 동안 내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한국에서 학교를 만들어 줬지만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 회장은 “지도에는 아주 멀리 있는 곳인데, 이렇게 큰 선물을 해 줘서 고맙다”며 “교육이 없으면 모든 것이 없다. 교육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학교 규모에 맞는 교사를 이곳에 더 보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마을 사람들은 연신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고 말했다.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마을에 큰 홍수가 나서 공사에 차질을 빚었다고 했다. 실제로 건물 곳곳은 아직 완성이 덜된 상태였고, 건물 주변 지반은 물컹한 진흙으로 덮여 있었다. 다음 한 관계자는 “완공하겠다는 날짜를 맞추지 못해 도움을 준 한국인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귀국하면 추가 공사가 진행 된다”고 전했다.

석종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꽃목걸이를 통해 전해 준 여러분의 마음을 한국에 잘 전할 것”며 “앞으로 이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주역으로 자라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석 대표는 또 “한국도 과거에 가난한 나라였지만, 외국에서 지원을 해 주면서 도움이 됐다”며 “건물을 만들 때 비가 많이 와서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가능하다면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석종훈 대표는 취재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건물을 2층으로 올려 10여개 교실을 더 지으면 IT 전문대도 운영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당장 플랜 네팔 관계자에게 약속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약속했다.

봉사에 참석한 한 직원은 “(표정을 보니) 우리보다도 더 행복해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직원은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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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바트 봉사 활동 일부로 부채춤을 추고 있는 다음 직원들(첫번째). 구경 나온 마을 사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봉사단원(두번째). 마지막 날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봉사단원(세번째). 버스 창 사이로 석별의 정을 나누는 학생들(네번째) / 서명덕 기자

◆아이들과 함께 웃고 뒹굴었던 5일

21일 오후부터 진행된 아이들과의 행사는 크리스마스인 25일까지 계속됐다. 다음 봉사단원들은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뒤, 이름표에 그림을 그리고, 풍선 만들기 이벤트가 계속됐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수업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현지 통역을 맡은 얌 바하두르 타파(Yam Bahadur Thapa)씨는 “네팔 학교에서 이런 풍부한 소재로 수업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커 가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인 22일에는 학교 운동회가 열렸다. 아이들과 다음 봉사단들이 함께 뛰는 행사였지만, 구경 나온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마을 잔치로 변했다. 밀가루 묻힌 사탕 주워먹기, 2인3각 경주, 단체 줄넘기, 단체 계주까지 이어졌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함께 뒹굴면서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됐다. 23일까지는 학교 벽에 벽화를 그려주는 행사가 이어졌다. 다음 디자이너가 한국에서 직접 디자인한 밑그림에 맞춰 봉사단원들이 직접 나섰다. 다음 봉사단원 한 명은 “우리가 그려준 학교 벽화를 보며 아이들이 꿈을 키워갈 것을 생각하니 즐겁다”고 말했다.

넷째 날인 24일 수업은 종이왕관 만들기, 바람개비 만들기, 영화 관람, 마술쇼, 부채춤 등으로 꾸며졌다. 왕관은 ‘학생들 각자가 왕처럼 귀중한 존재’라는 의미로 기획됐다. 특히 영화 관람과 부채춤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2주 동안 부채춤을 연습했다는 한 봉사 단원은 “비로 3분짜리 공연이지만, 아이들이 우리들을 마음을 알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 봉사단은 이를 위해 박스 10여개 이상의 문구류와 빔 프로젝터, 한복 등을 한국에서 직접 공수했다. 남은 학용품들은 모두 현지 학교에 기증했다.

특히 함께 가져 간 즉석 포토프린터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을 사진으로 밤새 출력했다. 이렇게 모아진 사진들은 마지막 날 디자인 판에 담아 아이들에게 이별의 선물로 나눠줬다. 이 종이판의 뒷면에는 5일 동안 함께 한 같은 조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았다. 일부 직원들은 1:1 결연 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는 시간도 가졌다. 석종훈 대표는 “결연아동 가정에 150여 달러를 들여 임신한 염소를 4마리 기증했는데 이렇게 뿌듯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연 아동이 있는 다른 직원들도 “한국에 돌아가면 염소를 보내는 캠페인을 할 것”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이 곳에서는 개나 소 보다는 ‘새끼 염소’가 훨씬 유용한 가축이다.

네팔간지에서 마지막 날인 25일 오전 프라바트 중학교의 운동장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학생들과 다음 봉사단원들이 서로 껴안으며 눈물로 인사했다. 여학생들은 눈이 빨개질 정도로 울었지만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손을 내밀며 매달렸다. 남학생들도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며 훌쩍거렸다. 다음 직원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한국에 돌아가기 싫다”며 애뜻한 정을 표시했다. 크리스마스까지 반납하며 날아 온 이국땅의 봉사 활동이었지만, 너무도 큰마음의 선물을 받아간다는 표정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함께 나와 일일이 네팔식 작별 인사를 건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그 무엇보다도 영원했으면 하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