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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4 18:48:47 #플랜뉴스 플랜코리아

가난·차별의 땅에 ‘희망 씨앗’ 심다

네팔 다르족 마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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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의 네팔간지 지역 바께군 ‘프라바트’ 학교 학생들이 지난 24일 수업시간에 만든 왕관을 쓰고 포털 다음 봉사단이 공연하는 마술쇼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다음’ 직원 모금으로 세운 10개 교실에 1500명 북적
신분제 벗기 위해 열기 뜨거워…“한국어 배우겠다”

지난 20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한시간, 다시 덜컹거리는 버스로 먼지를 뒤짚어 쓰며 한시간을 가 닿은 네팔간지 지역 바께군 다르족 마을. 10여년 동안 계속된 내전과 정치적 혼란은 이 마을을 ‘시간을 잊은 곳’으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무너진 건물들 옆 탁한 물이 흐르는 도랑가에 오두막을 짓고 신발을 삼거나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이른 아침이면 기온이 0도까지 떨어지고 습도마저 높아 추위가 뼛속을 파고 들지만, 이들의 몸을 감싼 옷은 허술하기만 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가난과 추위, 천형처럼 다가오는 차별 속에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 지역의 유일한 학교인 ‘프라바트’는 언뜻 폐허처럼 보인다. 40여년 전 마을 주민들이 직접 벽돌을 구워 만든 것이다. 형광등 불빛 하나 없는 이곳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아이들은 아침 9시께부터 학교에 모여든다. 한국 교실 크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좁은 교실 10개에 1~12학년 1500여명이 북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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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네팔간지 지역 바께군 프라바트 학교 3학년인 아니따 꾸마리비커(10)가 지난 22일 포털 다음 봉사단이 만들어준 막대풍선 왕관을 쓰고 혼자 앉아 있다. 
 
오랜 전쟁과 정치적 혼란은 아이들의 마음에도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무엇보다 이곳 아이들은 서로 다투는 일이 잦다. 국제자선단체 ‘플랜 네팔’의 길티 기타는 “오랜 내전으로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은 ‘포털 다음 봉사단’이 수업시간에 만들어 준 막대 풍선을 지키려다 상급생과 다툼을 벌인 6학년 머던비시(13)는 “이 정도 다툼은 자주 있는 일”이라며 “내 것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먼지 날리는 흙길을 걷는 아이들은 맨발과 슬리퍼가 반반이었다. 작은 발마다 두껍게 자리잡은 굳은살처럼 아이들의 마음도 굳어있었다.

프라바트 학교 3학년 아니따 꾸마리비커(10)는 수드라 안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인 불가촉 천민, 이른바 ‘언터쳐블’이다. 유달리 목소리가 작은 아니따는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었고, 자리를 찾을 때마다 두리번거리며 구석자리나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곳으로 갔다. 봉사단과 함께 하는 시간마다 아니따는 봉사단원들 틈으로 끼어들며 작은 목소리로 “그냥 이 자리가 편해서 왔다”고 말했다. ‘플랜 네팔’의 얌바하드는 “학교 수업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신분 차별이 없지만, 다른 아이들과 있을 때는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어 조심하는 것”이라며 “이 아이들이 신분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공부를 열심히 해 전문직이 되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좁은 논길로 20여분을 더 들어간 곳에 있는 아니따의 흙집은 방 한칸과 부엌이 전부다. 이 작은 집에서 아니따는 어머니와 오빠 둘과 함께 살고 있다. 아니따는 “아버지는 지난 4월에 인도에 일하러 갔다”며 “내년 4월에 돌아오신다고 했는데 건강히 돌아오시길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벽이면 한기가 올라오는 흙바닥에 깔 것은 얇은 이불 한두 장뿐이다.

이런 다르족 마을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한알 심어졌다. 포털 다음 직원들의 모금으로 프라바트 학교의 교실이 10개 늘어나게 됐다. 지난 21일 열린 교사 완공식에서 로겐드라 교장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아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며, 이 학교는 아이들이 유일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다음의 석종훈 대표는 “‘프라바트’라는 이름이 ‘시작’을 의미한다고 들었다”며 “우리의 작은 노력이 이곳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시작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7학년인 룬씨가르띠(14)는 “한국에 가서 앞선 기술을 배워와 네팔을 발전시키고 싶다”며 “이제부터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백열 전구를 켤 수 없어 촛불 아래에서 숙제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식모나 몸종으로 끌려가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아니따는 새해 소망을 쓰는 카드에 “꼭 선생님이 돼 나처럼 공부를 하기 어려운 친구들을 돕고 싶다”고 적었다. 소망을 눌러 담는 손길에 꾹꾹 힘이 실렸다.

여전히 뿌리깊은 카스트 제도도 이곳 아이들의 꿈을 짓누르고 있다. 브라만(승려계급), 제뜨리(귀족계급), 바이샤(농민·상인·몽골족), 수드라(천민)로 구분되는 카스트는 지난 1963년 공식적으로는 폐지됐음에도 여전히 이들의 의식에 뿌리박혀 유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