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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9 18:01:14 #플랜뉴스 플랜코리아

 

도움 받아야 할 사람들이 되레 남 돕기 중독된 사연

 

노동으로 번 돈으로 개도국 아동 지원, 플랜코리아 오만탁 후원자

 


오만탁(57) 씨는 3월부터 충북 음성군의 한 음료수 공장의 경비 일을 한다. 그 전에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이삿짐을 날랐다. 그는 2002년 9월부터 유엔 산하단체로 빈곤국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플랜코리아(www.plankorea.or.kr)를 통해 한 달에 5만 원씩 베트남 소녀 느구엔 티 키에우 반(16)을 후원하고 있다.


“1967년 육군 군수사령부에 근무할 때 파월장병들이 전쟁터로 나가는 광경을 생생히 봤지요. 이후 미군을 따라 한국군도 베트남에서 철수했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라이따이한’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잖아요. 이상하게 그게 마음에 걸리데요.”


처음 후원을 시작했을 때 오 씨 사정은 괜찮은 편이었다. 인천과 서울에 작지만 집을 한 채씩 갖고 있었고 동생과 함께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면서 수입도 쏠쏠했다.


하지만 몇 번의 수해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공릉동 일대 주민들은 중랑천 둑이 터지면서 집들이 물에 잠기자 서울시를 상대로 피해보상소송을 냈고 소송은 2004년 10월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오지랖이 넓었던 오 씨는 피해대책위원장을 맡아 주민들의 소송비용을 빌려주기도 했다가 돈과 집을 대부분 날렸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연명하는 생활을 해도 한 번 시작한 후원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삿짐을 한 번 나르면 6만∼7만 원은 버니까 느구엔에게 돈을 부치려고 한 달에 한두 번씩 일을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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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삿짐을 나르거나 경비 일을 해 번 돈으로 베트남 어린이를 후원하는 오만탁 씨]


무엇이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후원을 독려하는 것일까.


“새마을운동 이전에 살아본 우리 세대 사람들은 알 겁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 어떤지를.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그때 한국과 마찬가지예요.”


앞으로 사정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될까.


“제가 다부지고 건강한 체질이라 적어도 10년은 더 일할 수 있어요. 사정이 더 나빠지면 그때 최선을 다해 다른 일을 찾아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