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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15:10:04 #플랜뉴스 플랜코리아


을 그립니다. 

                                 - 김명기 후원자



어릴 때 감전사고로 인해 두 손을 잃은 그는 발로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작품 소재는 손이다. 

그림은 그에게 삶 자체이자 꿈이다. 손은 그림을 통해 슬픔과 좌절에서 희망이 된다. 

부재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손을 그리는 그는, 모든 자연과 손을 연계시켜 손의 형상을 그린다.

손은 자연이 되었다가 훗날에 지을 미술관이 되기도 한다. 


개인전 5회, 부스전 8회, 초대전 2회, 부산미술협회 제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구족화가 김명기 씨는 7살 때 감전사고를 당해 두 손을 잃었다. 5형제 중 맏이로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손까지 잃은 그는 1964년 양친회(Foster Parents Plan, 현 플랜코리아)를 만났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스웨덴의 양부모로부터 후원을 받았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스웨덴 양부모가 보내준 엽서를 보면서 꿈을 키웠어요. 꿈이라기 보다는 동경이었죠. 엽서에 있는 이국적인 모습들… 저기 한 번 가보면 좋겠다… 살기도 힘든데 외국은 꿈꾸기도 힘들었죠.”



독학으로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가 그만두기를 여러 번, 스무 살에 어렵게 그림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학원에 다니기 힘들었던 그 때, 고민 끝에 찾아간 미술학원에서 그의 스승을 만났다. 형편이 어려워 2-3개월 배우고 독학을 해야만 했던 그에게 회비 없이 그림을 알려주었다. 조각상을 챙겨주며 집에 가서 연습해 오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1977년, 김밝은터라는 이름으로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작품을 발표했다. 


구족화가로 등록이 되면서 장학금을 받고,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지자 어릴 때부터 꿈꾸던 외국 땅을 밟았다. 1992년 대만을 시작으로 5년마다 한번씩 중국, 미국, 캐나다, 그리고 50년 전 엽서를 보면서 동경하던 유럽을 방문했다. 또한, 어릴 때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현재는 방통대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스웨덴 양부모와 주고 받은 편지들


“플랜코리아는 몰라도 양친회는 알아요. 제가 도움을 받았던 곳이니까요. 양친회라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했죠. 이제는 형편이 돌아가니까 빚을 갚아야겠다. 그래서 아동을 두 명 후원하게 되었어요.”


TV를 시청하다가 양친회 스토리를 듣고 플랜코리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받았던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동후원을 시작했다. 어릴 때 자신을 꿈꾸게 해주던 스웨덴에서 온 엽서를 보며 꿈을 키우던 자신처럼, 케냐와 필리핀에 사는 후원아동이 꿈꾸면서 살기를 바란다고 그는 말한다. 



“어릴 때라 희미하게 떠오르지만, 후원을 받으면서 든든하다고 느꼈던 건 기억나요. 제가 후원하는 아이들도 저로 인해 든든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세상 어딘가에 자신을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기회는 찾아오니까, 그걸 기억하고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에게 손은 좌절이자 꿈이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손이 등장한다. 자연이 손으로 형상화되었다가, 훗날 그가 지을 미술관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을 지어 사회에 환원하는게 그의 또 다른 꿈이다. 플랜코리아와 함께 전 세계 장애아동들을 위한 펀딩도 기획하고 있다. 좌절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꿈을 그려나가는 자신처럼, 그의 그림을 보며 더 많은 사람들이 꿈꾸기를 바라고 있다. 


“플랜코리아를 통해서 제 이야기가 나가게 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자주 듣고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플랜코리아와 함께 어린이들이 미래를 그렸으면, 그리고 제 그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꿈꾸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