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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12:01:44 #플랜뉴스 플랜코리아

내가 함께 걸어갈게!



 -나유경 후원자


늘 드는 생각이지만, 플랜코리아와의 만남은 제게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플랜클럽과 번역 봉사활동을 통해 만나게 된 플랜코리아에서 저는 또 하나의 가족까지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항상 설렘의 연속이었던 플랜과의 만남, 그중에서도 제 후원 아동인 유스라와의 만남 이야기를 살짝 풀어보고자 합니다.


플랜코리아를 알게 됨과 동시에 저는 언젠가 저도 한 아동의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 왔습니다. 그리고 후원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 탄자니아로의 유학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아프리카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땅에 직접 가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그러한 것을 제가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야말로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탄자니아행이 결정되자마자 저는 플랜코리아에 아동후원신청을 했고, 그렇게 유스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플랜코리아를 통해 플랜 탄자니아와 탄자니아 내 사업장인 플랜 다르에스살람 사무소에 연락한 후 저는 유스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유스라의 집은 제가 유학생활을 하는 곳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작은 방 한 칸과, 좁은 문으로 이어진 부엌. 그렇게 작은 공간에서 유스라와 유스라의 어머니, 그리고 네다섯 명쯤 되는 유스라의 친척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두세 사람만 들어가도 모자랄 것 같은 크기의 방 안에 아이들을 포함해 6~7명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각보다 많이 힘겨워 보였습니다.


하루 종일 달라달라(탄자니아의 대중교통 버스)를 운전하고 있어 수입도 적을 뿐더러, 집에 잘 들어오지도 못해 가족과 떨어져 따로 사는 유스라의 아버지와, 집을 돌보느라 일하러 나가지 못하는 유스라의 어머니, 그리고 학교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도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집 형편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었던 유스라…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서 현실이 된 것을 본 후의 감정은 복잡했습니다. 왜 이 아이가 이렇게 자라나야 할까? 이 아이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어도 이런 환경에서 성장해야만 했을까? 이 아이가 행복한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아이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가장 큰 문제지? 같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탄자니아의 빈부 격차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탄자니아의 경제적, 행정적 중심지인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 평화의 항구라는 의미)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약 2.6배 넓이입니다. 특히 제가 지내고 있는 다르에스살람대학교 인근은 다르에스살람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치안도 안전한 편입니다. 그런데 캠퍼스 밖으로 나가 만난 세상은 정말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포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도로와 길은 물론, 건물도 제대로 지어진 것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고, 동네 전체가 정돈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학교에서 후원 사업 지역까지의 거리는 차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 그사이에 이렇게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아주 많이 놀라웠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서울이나 부산,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도시가 바로 이곳 다르에스살람인데, 이러한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은 탄자니아 내 심화한 빈부격차의 단면을 보는 것과도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와중에 제 앞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유스라의 눈망울 앞에서 저는 얼굴을 찌푸리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눈망울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입니다. 유스라는 처음 저와 플랜 직원들을 만났을 때 아주 많이 낯설어했습니다. 대부분의 탄자니아 사람들이 그렇듯, 유스라 또한 백인(이곳에서는 흑인이 아닌 사람들을 모두 mzungu(백인)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이곳 사람들이 유색인과 백인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합쳐 백인이라고 일컫기 때문입니다.)인 저를 낯설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애타게 이름을 불러보고 열심히 바라봐도 대답을 하지 않던 그녀를 위해(ㅋㅋㅋ) 저는 한국에서 준비해간 선물을 꺼내 들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큰 사람으로 자라나라는 의미를 담아 다양한 학용품을 많이 준비해갔는데, 유스라도 선물이 마음에 들었던지 제게 그제야 한 번 방긋 웃어주었습니다. 그 얼굴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유스라에게 물어본 그녀의 꿈은 의사였습니다. 자신부터가 어려운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아픈 곳을 고쳐주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아이의 꿈은 그 누구의 것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 작은 아이가 꾸는 커다란 꿈, 저는 유스라에게 그 꿈을 지켜주는 ‘라피키(rafiki, ‘친구’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탄자니아에서는 스와힐리어가 공식 언어로 통용됩니다.)’가 되려 합니다. 유스라를 만나던 날 저는 마음속으로 이 아이에게 약속했습니다.


내가 너의 친구로서, 동반자로서 너와 함께 네 삶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그리고 이제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잘 성장할 이 아이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무척 행복합니다. 유스라가 꿈을 이루는 날, 저는 그녀에게 가서 진료를 받을 겁니다 :D


내가 누군가에게 나누는 아주 작은 것이(혹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선물이 될 수 있고, 내가 하찮게 여겼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했던 것이었을 수도 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던 후원 아동 방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동 방문에 도움을 주신 플랜한국위원회와, 오래된 친구처럼 저를 편안하고 친절하게 맞아준 플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사무소 직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함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플랜과의 인연이 행복하게 지속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