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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7 00:00:00 #플랜뉴스 플랜지구촌

전쟁을 피해 루마니아에서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플랜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함께 도우며 상처를 극복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빅토리아는 플랜의 지원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빅토리아는 2022년 5월 이후 부쿠레슈티에서 14살의 니키타와 2살난 딸 레바와 함께 살고 있다. 빅토리아는 남편과 부모님이 살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살기를 원한다. 최근 교회에 마련된 난민캠프에 머물면서 빅토리아와 자녀들은 플랜에서 지원하고 있는 활동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해당 활동의 교육을 받은 현지 직원이 아동 보호 문제를 식별하고 보고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빅토리아 또한 부모를 위한 개별 심리 치료 교육과정에 참여했다.

빅토리아는 플랜의 지원으로 120유로의 현금 바우처를 받았다. 이 지원금으로 빅토리아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과 과자 같은 간식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가족들을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보낼 분유를 구입하기를 원했다.

빅토리아와 대화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빅토리아와 아이들이 겪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새벽 4시에 첫번째 폭발을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났어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어쩔 줄 몰랐어요. 두 눈을 질끈 감고, 방법을 생각해내려 했어요. 인터넷과 TV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어떠한 뉴스도 볼 수 없었어요. 그리고 나서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아들을 깨고, 딸은 자고 있었어요, 우리는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어요. 그날의 아침이 계속해서 떠올라요. 아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딸은 폭발음을 들을 때마다, 담요로 머리와 귀를 감싸고는 고통스러워 했어요

마을에 숨을 곳이라고는 두 곳 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항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였어요. 남편과 저는 둘다 항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었지만 보안 경비원은 아이들은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이 함께 그곳에서 머무는 것을 거부했고, 딱 하루만 머물고 다시 나와야 했어요.

매일매일 남편은 저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했지만 저는 남편을 두고 갈 수 없었어요. 우리는 3월 4일 까지 몸을 숨길 만한 곳에서 지냈어요. 그날은 마을에 첫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날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피소에 왔지만 그곳에는 서있을 수 있는 공간 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기를 결심했어요.

사이렌 소리가 멈추자 마자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30분 만에 그곳을 떠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피난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차가 많아 교통 상황도 좋지 않았어요. 저희는 추위와 비를 뚫고 7km를 걸었어요. 딸에게 따뜻해지도록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이라고 말해주었어요. 우리는 국경을 넘었고 어디로 갈지 고민했어요.

엄마 친구분 중 한 분의 댁에서 이틀 동안 지냈어요. 그리고 나서 집을 찾기 시작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희가 우크라이나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빌려줄 수 있는 집이 없다고 하거나, 월세를 비싸게 받았어요. 결국 보증금을 환불 받지 않는다는 조건과 한달 치의 공과금을 선불로 지급하고 아파트를 구했어요.

10일 후에 이스라엘의 친척들이 함께 지내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친척들은 모든 서류를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이스라엘로 갔고, 두 달 동안 생활했어요. 하지만 그곳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어떤 도움도 없었고, 상황도 좋지 않았어요

우리는 다시 머물 곳을 찾기 시작했어요. 페이스북에서 친구의 글을 보고 루마니아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차례의 연락을 주고 받고 친구가 루마니아로 올 것을 제안했어요.

5월 20일에 루마니아에 도착했어요. 딸의 두 번째 생일 이틀 전, 저희는 이곳에서 함께 축하했어요. 이곳에 와서 정말 안심이 됐어요. 집에서 더 가깝고, 매우 친근하며,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딸이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만 나도 그 전에는 매우 겁에 질려 뛰면서 소리를 질었는데, 이곳에서 생활하고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괜찮아졌어요. 딸은 현재 매우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딸은 미술 활동에 매우 흥미를 갖고있어요: 가끔 딸이 작은 반 고흐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을 매우 좋아해요

아들도 엄청 힘들어했어요. 매일 화가 나있었고, 처음 한달 동안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안정을 되찾고, 행복해하고 있어요. 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싶어했고,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집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저희는 전쟁이 멈춘다면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어요.

남편은 저희가 안전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안심되고 행복하다고 해요. 하지만 아이들과 저는 남편이 보고 싶어요. 남편과 저는 학교에서 만나고, 21년 동안 계속 함께 지냈습니다. 이번이 처음 떨어져 지내는 것 같아요. 남편이 항상 문제를 해결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남편도 아이들을 보고싶어해요.

플랜을 통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저희를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어요.

이 지원금으로 저는 아이들이 먹을 과일과 간식을 사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한 것을 사고 싶어요.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는 마리우폴 사람들이 많아요. 아이들이 먹을 이유식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고 싶어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저는 전쟁이 시작되자 마자 돈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뿐만 아니라 전쟁 상황에서 저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갖고 있다면 사람들과 나눠 써야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아들은 아빠처럼 기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해요. 아들의 장래희망은 프로그래머예요. 곧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에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믿어요.